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려고 했어요 - 오프라 윈프리
Q. 나에게 크고 쓰린 불행이 닥쳤어요. 교통사고를 당해 이제는 걸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온몸에 화상도 심하고요. 당장의 통증도 문제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이렇게 다친 몸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상황을 이겨낼 수도 해결할 수도 없을 것만 같아요
A. 60년이 넘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열네 살 때 내 존재를 뒤흔든 일이 있었어요.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큰 불행을 당한 겁니다.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곧 기회가 찾아오더군요.
어머니는 10대에 나를 낳았어요. 아빠도 없이 싱글맘으로서 힘든 삶을 살았죠. 나도 열네 살일 때 임신을 하고 말았답니다. 죽고 싶었어요. 꼭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도도 했어요.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출산을 했답니다. 너무 일찍 태어난 아이는 곧 숨졌습니다. 1968년 태어나서 1968년에 죽은 그 이름 없던 아이가 나의 유일한 자식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케이난'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임신, 자살 시도, 출산, 그리고 아이의 죽음 등 열네 살 소녀가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빠르게 휩쓸고 지나갔어요. 나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어요?
내가 이른바 성공을 하고 부자가 되고 유명해질 거라고 당시에 상상하는 것이 가능이나 했겠어요? 그런데 열네 살에 임신했던 그 아이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가장 큰 불행에 빠졌던 나는 자라서 한국 돈으로 2조원이 훨씬 넘는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자선 활동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열네 살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죠.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솔직히 나도 모르겠어요. 다만 언제나 나를 괴롭힐 것만 같은 불행이 어느 순간 물러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열네 살 때 나는 학교로 돌갔어요. 학생회의 대표가 되더군요. 법정 연설의 최우수자가 되었고요. 백악관에서 젊음을 주제로 한 회의가 열렸는데, 나는 테네시주를 대표하는 두 명의 학생 중 하나로 선발되었죠.
나는 학교생활을 열심히 한 덕에 테네시 주립대학교의 장학금을 획득했어요. 대학 입학 전에도 좋은 일이 많이 생겼어요. 열일곱 살때 '미스 블랙 테네시'라는 미인 대회에서 우승했고, 고등학생인데도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뉴를 읽는 일을 할 수 있었죠. 그리고 열아홉 살에는 내슈빌의 WLAC -TV의 최초 흑인 여성 앵커가 되었답니다.
그렇게 방송을 하게 되었고 나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답니다. 열네 살 때 자살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때의 불행 때문에 내 인생의 모든 기회를 포기했다면 큰 비극이었을 겁니다. 큰 부자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죠. 다만 이 말은 기억해주세요.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라고 생각되어도, 시간을 갖고 기다리면 그 불행이 물러나고 새로운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겁니다. 불행에게 지지 마세요. 불행도 바쁘고 할 일이 많아요. 나에게만 독점적으로 붙어있지 않을 거예요. 끝으로 두 가지 조언을 드릴게요. 내가 한 말이지만 나 자신도 무척 좋아하는 말입니다
"상처를 지혜로 바꾸세요"
"당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세요. 그러면 더 많이 갖게 될 거예요. 당신이 갖지 못한 것에 집중하면 결코 충분히 가질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