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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인생 이야기

나는 머리는 최고 좋은데 인성은 최고 나쁘다고 할 수 있어요 - 아이작 뉴턴

by hodwoo 2020. 8. 2.

Q. 나는 성격인 나쁩니다. 주위에서 다들 그렇게 말하고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요. 계속 이러다가는 주변에 아무도 없이 그냥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을 것 같아요.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곁에 아무도 없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게 아닐까요? 너무 불안합니다.

 


 

A. 지나치게 걱정하지는 마세요. 성격이 나보다 나쁘기야 하겠어요? 나는 머리는 최고 좋은데 인성은 최고 나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여든네 살까지 그럭저럭 살았고, '위대한 과학자'라는 수식어도 얻게 되었어요. 내 이야기가 위로가 된다면 좋겠어요.

 

 

아이작 뉴턴 <1642년 12월 25일, 영국 - 1727년 3월 20일>

 

 

사람들은 나를 위대한 과학자로 기억합니다. 가장 위대하지는 않더라도 손가락에 꼽히는 굴지의 과학 천재라고 부를 정도는 됩니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면모도 있어요. 나는 아주 성격이 나빠요. 그 사실을 증언한 사람이 정말 많아요.

 1995년 영국 왕립학회 <과학사 저널>에 <아이작 뉴턴의 인성>이라는 논문이 실렸어요. 논문에 따르면 17세기의 동료 과학자 윌리엄 위스턴이 나를 최악으로 평가했어요. "뉴턴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공포심이 크고 조심성이 많고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고 했던 겁니다. 또 다른 동료 존 플램스티드는 "교활하며 야심적이고 칭찬을 지나치게 원하며 반대를 견디지 못한다."라고 했어요. 또 20세기의 전기 작가 프랭크 E. 매뉴얼은 "뉴턴은 친구들과 절교한 후 새로운 사람에게 접근해서 주변 사람들이 음모를 꾸민다고 비난했고 있지도 않았던 대화를 지어내 말했다."라고 주장했더군요.

 

 

 

 

나는 내가 비뚤어진 사람이라고 인정하기 싫어요. 그러나 부인하기 어려운 게 나한테 불리한 증거가 너무 많군요. 어릴 때 친어머니와 의붓아버지를 불태우겠다고 협박했던 일도 있었죠. 내가 직접 기록해둔 게 남아있을 거예요.

 

 나는 부모님뿐 아니라 동료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아 독하게 싸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와의 갈등이에요.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발명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자 나는 내 연구를 표절했다고 그를 강력 비난했어요. 후대의 학자들은 둘이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미적분학을 개척했다고 평가했지만, 사람을 의심하는 성격인 나는 라이프니츠를 도둑이라고 확신했어요. 나는 라이프니츠를 비난하고 나 자신을 칭찬하는 글을 가명으로 쓰기도 했어요.

 

 과학자 로버트 훅과의 불화도 유명합니다. 1676년 나는 훅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문장을 썼어요. "내가 더 멀리 봤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유명한 문장입니다. 앞선 과학자들의 업적을 추겨 세우는 겸손의 표현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일부 전기 작가들은 표독스러운 뜻이 숨어 있다고 주장하더군요. 당시 갈등 관계에 있던 훅은 작고 왜소했는데 일부러 '거인'이라는 단어를 써서 왜소증을 조롱했다는 겁니다. 사실이냐고요? 사실여부는 내가 확인해드릴 수가 없어요. 알아서 판단하세요.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당연히 자손도 없죠. 전기 작가들은 여든네 살에 사망한 내가 성경험도 없다는군요. 또 내가 여성과 성경험을 아주 싫어하는 말을 남겼다고 사람들은 지적합니다. 루머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 없는 게 결정적인 '제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보자는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입니다.

 

 내 장례식 즈음에 런던에 있었던 볼테르는 내가 '어떤 열정도 느끼지 않았고... 여성들과 어떤 거래도 없었다."라고 적었어요. 또 그런 사실을 내가 죽을 때 곁에 있던 의사들이 확언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치명적인 마지막 펀치입니다. 이제 나는 불안과 의심과 강하고 부모를 협박하고 동료들과 싸우고 온갖 독설을 퍼붓고 연애도 못한 사람이네요. 좋아요. 반박하지 않겠어요. 논쟁을 해봐야 평가가 바뀌지 않을 테니 힘 빼지 않고 포기하겠어요.

 

 

 

  

 

 그런데 내 성격은 왜 그 모양이었던 것일까요? 유전의 영향도 있겠지만 정신분석학적인 설명도 있습니다. 나는 당시 영국에서 사용되던 율리우스력으로 1642년 12월 25일에 태어났어요.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아기의 환경은 평범하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세 달 전에 사망했고, 세 살 때는 어머니와 이별했어요. 어머니가 부유한 남자와 재혼을 했기 때문이죠.

 

 

 할머니가 나를 맡아 길렀어요. 8년 후 재혼한 남편마저 죽자 어머니는 낯 모르는 동생들을 데리고 돌아왔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의붓아버지를 싫어했고 어머니를 많이 원망했습니다.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신뢰할 능력을 키우지 못했고 타인을 불신하고 공격하는 성격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어요. 이런 분석에 따르면 나는 측은한 존재입니다. 인성이 고약했을지언정 사실은 나도 상처 받은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인성이 나빠서 고민하는 분께는 세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먼저 혁명을 원하지 마세요. 조금씩은 몰라도 획기적인 성격 개조는 불가능합니다. 성격 혁신은 헛꿈입니다. 두 번째로는 두려움을 버리세요. 성격이 나쁘면 또 나쁜대로 살아갈 길이 있어요. 나도 여든네 살까지 그럭저럭 잘 살았어요. 세월은 성격 파탄자에게도 지혜를 줄 겁니다. 조금씩 나아질 겁니다. 끝으로 나쁜 성질을 숨기고 운 좋게 결혼하게 되었다면 자녀에게 잘해주세요. 내 성격은 못 고쳐도 아이에게 사랑을 쏟으면 유전자 정보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어릴 때 버림받았던 나는 특히 사랑 넘치는 육아를 강조하고 싶어요.

 

 


 

 

< 아이작 뉴턴의 경력 사항 >

 

 

1703,  영국 왕립협회 회장

1699, 영국 조폐국 장관

1691, 영국 조폐국 감사

1688, 영국 의회 하원의원

1669,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루카스 교수

1668,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전임특별연구원

1667,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특별연구원

 

 

 

< 아이작 뉴턴의 도서 >

1729, 광학강의

1704,  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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