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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인생 이야기

나는 추리 소설가입니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죠 - 애거사 크리스티(영국 추리 소설가)

by hodwoo 2020. 8. 19.

Q. 애인이 나를 배신했어요. 이 세상에서 그냥 사라지고 싶은 기분입니다. 모든 것이 싫어요. 추리 소설에서 나쁜 자들을 시원하게 응징했던 당신께 도움을 구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A. 그 괴로움을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버리면 비참하죠. 나도 바람난 남편 때문에 큰 충격을 받고 대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배신한 애인에게 복수하는 법은 간단해요.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애인 따위 없더라도 오롯이 홀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추리 소설가입니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죠. 위키백과를 보면 아시겠지만 나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픽션 작가 랭킹에서 공동 1위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책이 최대 40억 권 팔렸다고 추정되는데 내 책도 그 정도 팔린 겁니다. 내 소설이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사실 나의 실종 사건도 그에 못지않게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어요. 돌아보면 어떤 범죄 추리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했죠.

 

 

애거사 크리스티 <1890년 9월 15일, 영국 - 1976년 1월 12일>

 

 

 1926년 12월이었어요. 나는 딸을 재우고는 서닝데일에 있는 집을 떠났어요. 다음날 내가 몰던 차가 버려져 있는 게 발견되었죠. 차 안에는 가죽 코트와 운전면허증이 있었고요. 유명 작가가 돌연 실종되자 영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죠. 1,000명의 경찰과 5,000명의 자원자들이 나를 찾아 나섰습니다. 비행기가 뜨고 신문에 기사와 광고가 났어요. 사냥개가 투입되고 고 아서 코난 도일 등 추리 소설가도 동원되었지만 허탕이었죠. 흔적을 찾을 수 없었어요.

 

 내가 범죄에 희생되었다고 판단할 만한 정황이었어요. 첫 번째 용의자는 바로 남편 아치볼드 크리스티였어요. 그 못된 인간은 직전에 낸시 닐이라는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면서 내게 이혼을 요구했어요. 그에게 나를 제거할 동기가 충분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11일이 지나고 누군가 멀쩡히 살아있는 나를 목격했어요. 해러거트에 있는 한 호텔이었어요. 호텔 직원이 신고를 했는데 내가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는 걸 봤다고 했어요. 나는 그 호텔에 테레사닐이라는 가명으로 투숙했어요. 남편이 사랑했다는 그 젊은 여자 낸시 닐의 성을 빌려 썼던 거죠.

 

 나중에 실종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발표를 냈는데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기억 상실증에 걸려서 생긴 해프닝이었다는 내용이었어요. 세상은 믿지 않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을 거에요.

 

 

 

 

 사실 가출 당시 내가 정신이 붕괴된 상태였던 것은 맞아요.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충격을 받았는데 거기에다가 덮친 격으로 바람난 남편이 뻔뻔스럽게 이혼을 요구하는 바람에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죠. 기억 상실증에 걸려서 자기가 누구인지 잊고 호텔에서 춤추며 놀아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어요. '테레사 닐'이라는 가명을 쓴 게 수상하다고 할지 몰라도 무의식적으로 그랬다고 우기면 반박이 불가능할 겁니다.

 

 반려자나 연인이 바람을 피우면 복수하고 싶어 집니다. 복수심이 가슴속에서 끓어올라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건 나쁜 복수는 하지 마세요. 반드시 발각되어 후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여 들키지 않아도 평생 괴로운 비밀을 안고 살아야 할 거예요. 치명적 비밀을 숨기고 사는 건 정말 가혹한 형벌입니다.

 

 바람난 연인에게 우아한 복수를 해보세요. 다들 답을 예상할 텐데 좋은 사람을 찾아 다시 사랑하는 겁니다. 나는 복수에 성공했어요. 이겼어요.

 나는 1930년에 고고학자인 맥스 맬로원과 결혼했습니다. 나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젊은이였죠. 신랑은 1904년 출생이니까 나와 결혼했을 때 스물여섯 살 정도였어요. 마흔 살 신부에게는 고맙도록 젊은 신랑이었어요. 우리는 40년 넘게 행복하게 살다가 사별했어요. 혹시 직업을 따져서 남편을 선택하실 거라면 고고학자를 강력 추천합니다. 의사나 기업가보다 월등해요. 이유는 내가 이렇게 설명했어요.

 

 

 

 

 

 "고고학자는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남편이에요. 여자가 늙어 갈수록 남편의 관심이 커지지 때문이죠."

 

 그런데 위에서 배신당하면 새 사람을 빨리 구하라고 조언했던 건 좀 짜증 날 수도 있겠네요. 너무 흔할뿐더러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소리니까요. 그래서 다른 조언을 덧붙이고 싶어요. 설사 새 애인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으면 됩니다. 독립적 행복을 느끼는 기술은 삶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딸은 딸이다>에 썼던 글귀를 소개할게요.

 

 "이 세상에 친구가 딱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와 동행하는 그 친구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 친구와 다정하게 지내세요. 나 자신과 사는 방법을 배우세요."

 

 혼자 있어도 행복하다면 애인이 필수가 아니라 액세서리가 됩니다. 연인을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장식물로 여길 수 있는 것이죠. 자기 자신의 '절친'이 될 때 더 성숙하고 기분 좋은 연애가 가능할 것 같아요.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가의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살인사건



끝없는 밤에 태어나다 



마술 살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 강의 죽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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