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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인생 이야기

사람이 주는 행복을 경험했어요 - 빈센트 반 고흐

by hodwoo 2020. 7. 11.

Q. 인간이라고 모두 사회적 동물은 아닌가 봐요. 나는 사람이 싫어요. 어울리는 게 힘들고 교감도 피곤합니다. 내 인생에 끼어드는 사람들이 짜증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사람이 견딜 수 없다면 함께 있지 말아야죠. 싫은 사람과의 대면 시간을 최소로 줄여야 할 겁니다. 사람들이 죄다 싫으면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사세요. 고독한 삶도 괜찮은 삶일 겁니다. 그런데 내 이야기도 들어보세요. 사람이 행복도 줍니다. 예민하기 짝이 없는 나도 사람이 주는 행복을 경험했어요.

 

 

 

-빈센트 반 고흐 작품-

 

 

 

 나를 오해 마세요. 풀 고갱을 비롯한 친구들 앞에서 자주 폭발하고 귀를 스스로 자르고 정신 병원에 입워했으며 결국 권총 자살을 했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반사회적 현실 부적응자는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혐오하지도 않았고요. 내가 예민해서 상처를 잘 받은 건 사실이지만 나도 따뜻한 관계로 지낸 사람들이 있었어요. 동생 테오를 비롯한 가족이 그랬고, 나의 스승이었던 안톤 모브도 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짧았지만 가장 완전한 행복을 줬던 시엔 후르닉과 그녀의 아이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882년 초반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네델란드 헤이그의 추운 길거리에서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나보다 세 살이 많은 그녀는 임신중이었어요. 다섯 살 딸 마리아도 함께였어요. 그녀는 뱃속 아기의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생계 수단은 매춘이 전부여서 추운 거리를 돌아다니며 매춘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해야 했어요.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작품-

 

 

나는 매춘부 여성과 어린 딸을 나의 작고 누추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녀에게 적은 돈과 먹을 것 등을 줄 테니 그림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녀가 받아들이더군요. 화가가 원하는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인데 그녀는 잘해냈어요. 그해 4월에 그렸던 <슬픔> 등 여러 작품이 아직 남아 있어요. 우리 둘은 모델과 화가로 만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군요. 5월에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 그 여자는 이제 길들여진 비둘기처럼 나에게 애착을 느낀다. 한 번만 결혼한다면 내게 그녀와 결혼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게 있을까? 결혼이 그녀를 돕는 유일한 길이야. 아니면 생활고가 끝이 낭떠러지인 길로 그녀를 밀어 넣을 거야. "

 

 나는 시엔과 그녀의 딸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가 다시 거리로 나가길 원치 않았어요. 보호하고 싶었죠. 물론 연민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시엔에게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결심하고 공표했던 것이었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작품-

 

 

 

소식을 들은 나의 가족과 친구는 그야말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까지 딸린 전직 매춘부와의 결혼을 모두 반대하며 나섰어요. 심지어 가장 가까웠던 동생 테오까지도 반대했었죠.

 

 하지만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가 남녀의 사랑을 끝내는 법은 없습니다. 영국의 작가인 마틴 베일리는 <빈센트 반 고흐의 생활>에서 우리 두사람이 주변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서로 어울리지 않아 헤어졌다고 말합니다. 나는 예술가가 되려고 정신이 팔린 사람이었고 시엔은 나의 문학이나 그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어요. 외부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서로 공유할 내면세계가 없었으니까 이별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타당한 평가일 겁니다. 가족의 반대도 영향을 미쳤겠죠. 시엔이 다시 술을 마시고 매춘에 나서서 헤어졌다는 소문도 돌더군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이었어요. 보통 연인들처럼 우리도 갈등을 키우다가 헤어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18개월 동안 시엔 가족과 함께하면서 나는 완전한 가정을 이룬 사람의 행복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의 거실에는 테이블, 의자, 난로, 안락의자가 있었어요. 그리고 초록색 커버로 씌운 작은 아기 침대도 있었고요. 나는 특히 아기 침대를 볼 때마다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침대 안에는 갓 태어난 아기 윌렘이 잠들어 있었어요. 그 옆에 시엔과 내가 서서 아기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기를 얻은 부부의 모습이 연상되지 않나요? 나는 윌렘과 자주 놀았습니다. 친자식처럼 사랑스러웠어요. 1883년 5월의 편지에는 그 애틋함에 대해 썼어요.

 

 " 아기는 나와 작업실 구석 바닥에 자주 함께 앉아 있었다. 아기는 그림을 보며 까르르 웃었다. 벽에 붙어 있는 것들을 보느라 작업실에서는 조용했어. 아, 얘는 아주 다정해!"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지나고 사랑은 끝났어요. 시엔과 나는 이별을 결심했어요. 내가 헤이그에서 기차를 타고 떠날 때 시엔과 아이들은 역으로 배웅을 나왔어요. 나중에 나는 "당시의 이별이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죠. 나는 시엔 가족과 지내면서 완전한 가정을 이룬듯이 행복했어요. 시엔과 마리아와 윌렘에게 고마워요. 거칠고 외로운 나의 삶에서 그렇게 따뜻한 시간은 많지 않았어요.

 

 

-빈센트 반 고흐 작품-

 

 

 

참고로 시엔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1904년 쉰네 살에 암스테르담의 운하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어요. 나는 그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알다시피 나는 14년 전인 1890년에 서른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행복하게 삶을 마감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나 시엔 모두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화가여서 다행입니다. 시엔과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내 그림에 담겨 아직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빈센트 반 고흐 <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

 

 

 

 사람이 견딜 수 없이 싫다면 어쩔 수 없어요. 사람들을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 이야기도 기억해주세요. 나는 불가능할 것 같은 행복을 사람 덕분에 느꼈습니다. 모두 천대하던 매춘부와 그녀의 아이들이 고뇌하는 화가를 보듬어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나와 행복을 나눌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에 대한 마지막 희망은 버리지 말고 꽉 거머쥐어야 내가 외로운 괴물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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