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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인생 이야기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려고 했어요 - 오프라 윈프리

by hodwoo 2020. 7. 12.

Q. 나에게 크고 쓰린 불행이 닥쳤어요. 교통사고를 당해 이제는 걸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온몸에 화상도 심하고요. 당장의 통증도 문제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이렇게 다친 몸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상황을 이겨낼 수도 해결할 수도 없을 것만 같아요

 


 

 A. 60년이 넘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열네 살 때 내 존재를 뒤흔든 일이 있었어요.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큰 불행을 당한 겁니다.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곧 기회가 찾아오더군요.

 

 어머니는 10대에 나를 낳았어요. 아빠도 없이 싱글맘으로서 힘든 삶을 살았죠. 나도 열네 살일 때 임신을 하고 말았답니다. 죽고 싶었어요. 꼭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도도 했어요.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출산을 했답니다. 너무 일찍 태어난 아이는 곧 숨졌습니다. 1968년 태어나서 1968년에 죽은 그 이름 없던 아이가 나의 유일한 자식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케이난'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임신, 자살 시도, 출산, 그리고 아이의 죽음 등 열네 살 소녀가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빠르게 휩쓸고 지나갔어요. 나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어요?

 

 내가 이른바 성공을 하고 부자가 되고 유명해질 거라고 당시에 상상하는 것이 가능이나 했겠어요? 그런데 열네 살에 임신했던 그 아이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가장 큰 불행에 빠졌던 나는 자라서 한국 돈으로 2조원이 훨씬 넘는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자선 활동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열네 살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죠.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솔직히 나도 모르겠어요. 다만 언제나 나를 괴롭힐 것만 같은 불행이 어느 순간 물러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열네 살 때 나는 학교로 돌갔어요. 학생회의 대표가 되더군요. 법정 연설의 최우수자가 되었고요. 백악관에서 젊음을 주제로 한 회의가 열렸는데, 나는 테네시주를 대표하는 두 명의 학생 중 하나로 선발되었죠.

 

 나는 학교생활을 열심히 한 덕에 테네시 주립대학교의 장학금을 획득했어요. 대학 입학 전에도 좋은 일이 많이 생겼어요. 열일곱 살때 '미스 블랙 테네시'라는 미인 대회에서 우승했고, 고등학생인데도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뉴를 읽는 일을 할 수 있었죠. 그리고 열아홉 살에는 내슈빌의 WLAC -TV의 최초 흑인 여성 앵커가 되었답니다.

 

 

 

 

그렇게 방송을 하게 되었고 나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답니다. 열네 살 때 자살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때의 불행 때문에 내 인생의 모든 기회를 포기했다면 큰 비극이었을 겁니다. 큰 부자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죠. 다만 이 말은 기억해주세요.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라고 생각되어도, 시간을 갖고 기다리면 그 불행이 물러나고 새로운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겁니다. 불행에게 지지 마세요. 불행도 바쁘고 할 일이 많아요. 나에게만 독점적으로 붙어있지 않을 거예요. 끝으로 두 가지 조언을 드릴게요. 내가 한 말이지만 나 자신도 무척 좋아하는 말입니다

 

 

 

 

 "상처를 지혜로 바꾸세요"

 

 

 "당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세요. 그러면 더 많이 갖게 될 거예요. 당신이 갖지 못한 것에 집중하면 결코 충분히 가질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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